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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시에 사는 대리운전기사 김천석(54·가명)씨는 작년 초 일하다 발을 삐끗했는데 자리에 주저앉은 채 일어날 수가 없었다. 허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낀 것이다. 평소에도 허리가 아파 진통제를 먹는 일이 잦았는데 증상이 악화됐다. 그때부터 한 달 반을 쉬어야 했다. 그는 아들과 둘이 살며 하루 7시간 정도씩 일해 월 150만~200만원을 번다. 벌이가 끊기자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할 상황이 됐다.
프리랜서 대리기사는 금융기관 대출도 쉽지 않다. 카드 현금 서비스는 곧장 고금리 빚이 되니 무작정 쓰기도 어렵다. 당시 정부가 운영하던 ‘긴급생계비대출’도 금리가 연 15.9%나 됐다.
막막한 그를 도운 것은 같은 일을 하는 대리기사들이 모여 만든 ‘카부기 공제회’였다. 연 3% 금리로 150만원 급전을 구해 시름을 덜었다. 2022년 생긴 카부기는 ‘카드라이브 부울경 대리기사’를 줄인 말이다. 회원 400명 정도가 내는 월 1만원 회비로 2000만원 안팎 규모의 작은 기금을 유지해, 김씨 같은 회원들에게 소액 대출이나 병원비 지원 등을 한다.
프리랜서 대리기사는 노동시장 바깥에서 기업이나 노조 등의 울타리 하나 없다. 최저임금 안팎을 벌며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병을 얻거나 작은 사고로도 위태로운 빈곤에 빠진다. 하지만 카부기 공제회를 통해 서로의 은행이자 보험이 되어준다. 자발적인 상호부조(相互扶助)이자 자체적인 사회안전망인 셈이다.
김씨는 원래 중소기업에서 10년 넘게 일한 직장인이었다. 휴일 없이 오랜 기간 과로하다보니 건강이 나빠져 퇴사했는데, 이후 아내와도 갈라서고 고등학생 아들과 둘이 산다. 별다른 기술이 없는 40대 남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대리운전이었다고 한다.
김철곤 공제회 공동대표는 “사업 실패, 가족의 투병 등 이곳 대리기사 중 사연 없는 사람 없고 신용불량자도 많다”며 “사채에 손을 벌리는 이도 있어 ‘서로 도와보자’는 생각이 모여 공제회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회원들은 ‘동료’가 생겼다는 걸 장점이라고 했다. 홀로 일했지만 내게 공감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다. 경남 김해시에 사는 이미영(59)씨는 사업 실패 후 46살에 우연히 시작한 대리운전을 14년째 하고 있다. 여성인 그를 특히 더 힘들게 한 건 무례한 일부 고객들이었다. 폭언을 일삼고, 성적 발언과 신체 접촉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럴 때 힘이 됐던 게 공제회 동료들이었다. 겪은 일을 털어놓기도 하고, 야유회를 떠나기도 한다. 가끔 다 같이 봉사활동도 한다.
카부기 공제회는 지역 기금인 ‘부산형사회연대기금’, 공제 연합인 ‘사단법인 풀빵’과 협력해 지원을 더 두껍게 하는 시도도 하고 있다. 풀빵은 전태일 열사가 돈을 털어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던 마음을 잇는다는 뜻을 이름에 담은 단체다. 김철곤 공동대표는 “부산형사회연대기금과 협약으로 긴급 대출도 하게 됐다”며 “회비 6000원을 더 내면 풀빵을 통해 150만원의 소액 대출, 법률상담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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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이후 286조6천억원의 전세자금 대출이 이뤄지며, ‘서민 주거 안정’을 명분 삼은 전세대출 확대가 외려 집값 거품과 전세 사기 부작용을 키웠다는 시민단체 분석이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5년간 전세대출액 및 집값 등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며, 정부에 부작용이 큰 전세 대출을 확대하는 대신 장기 공공 임대 주택을 공급하는 등 주거 대책 기조를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김성달 경실련 사무총장은 “전세 시장은 실수요시장이기에 세입자가 (고가의 전세 보증금을)부담할 수 있을 때 전세가가 오른다.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게 정부의 무분별한 전세자금 대출 확대였다”고 짚었다.
경실련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약 5년 동안 이뤄진 전세자금대출 총액은 286조6천억원에 이른다. 특히 20대와 30대가 전세자금 대출 공급액의 65%를 차지했다. 정택수 경실련 부동산 국책사업팀 부장은 “전세자금대출은 사실상 (전세)사기꾼들의 자금줄 역할을 해 왔다”며 “최근 5년간 전세자금 대출자의 65%가 20~30대인 것과 전세 사기 피해자 상당수가 청년층인 것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3년 10월 기준 상환하지 않고 남아있는 전세자금 대출잔액은 161조원으로 2008년 3천억원에서 큰 폭으로 늘어났다. 전세 대출 기준이 지속해서 완화돼 온 영향이다. 특히 전세 대출 증가의 원인이 되는 한국주택금융공사 전세자금보증 공급액을 정부별로 보면, 윤석열 정부의 연평균 공급액은 약 47조원으로, 문재인 정부(40조원)보다 많다. 전세자금보증은 세입자가 은행에서 전세자금을 쉽게 대출 받도록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보증을 해주는 제도다. 정택수 부장은 “윤석열 정부 들어 전세자금보증 요건은 지속해서 완화되는 추세”라며 “이대로라면 역대 정부 중 최대 공급액을 기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경실련은 정부에 △모든 임대인에 반환보증가입 및 주택임대사업자 등록 의무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등 전세대출 기준 강화 △장기공공임대주택 대거 공급 등을 요구했다. 조정흔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은 “민간 시장에만 주거 안정 문제를 맡길 것이 아니라 장기공공임대주택을 대량 공급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라며 “공공택지 개발 시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큰 틀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